조선시대 사람들은 과연 잘먹고 잘 살았을까?(펌글) 역사

요즘 계량경제사연구가 발달하면서, 조선시대의 재조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최근에 밝혀진 재미있는 사실로, 조선시대 임노동자들의 임금이 곡물로 환산했을 때 상당히 높았다고-거의 세계 최고수준으로-한다. 조선시대 곡물로 환산한 임금은 경제적으로 보다 발달했다고 여겨지는 양쯔강 하류 삼각지대나 일본보다 거의 2배에 달한다.

이 연구성과는 와전되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인당 곡물 소비량이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듯하다. 곡물량을 단순 계산해서, 현대인들보다도 많이 먹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마저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사실 우리는 몇백년전사람들이 일인당 얼만큼의 곡물을 소비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계량경제학 연구가 고도로 발달한 서구사회조차, 300,400년전 일인당 곡물 소비량 같은 것은 거의 때려맞추는 것에 불과하다.

100년전, 200년전 되돌아갈 것 없이 당장 현재 일인당 소득이나 곡물 소비량만 해도 계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연구하는 국민계정이라고 하는 경제학 분야가 따로 있어 우리나라만 해도 수천명의 경제학자들이(한국은행, 재경부등 행정부, 각종 연구소, 기업 등등) 매일 이러한 값들을 구하고 있다.

우린 200년전 300년전 조선의 총곡물 생산량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인구조차 추정치에 상당한 오차가 있을 정도니, 일인당 소비량 같은 것은 알길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나도는 일인당 곡물소비량값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 여기에는 시장의 마법이 숨어있다. 비록 시장구성원이 경제전체의 상황에 대해 전혀 모르더라도, 오직 가격만을 보고 최적의 거래를 하면, 경제전체적으로 균형에 도달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거시 경제지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지만, 조선시대 시장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된 가격은 기록을 통해 제법 상세히 알고 있는 것이다.

조선 경제의 특징은 노동자의 임금, 특히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이 곡물로 환산했을때 높다는 것이다. 반면 당시 국제공용화폐였던 은으로 환산했을 때 조선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매우 낮다. 쉽게 얘기해서 일하고 은화로는 몇푼 못 받았지만 곡물 값이 워낙 쌌기에 그 은화로 많은 곡물을 살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는 크게 봤을 때 비서구지역의 특징이기도 하다. 서유럽을 제외하고 은임금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던 양쯔강 하류나 일본의 경우도 영국, 네덜란드등의 세계 최고 임금 지역에 비해 18세기 후반-산업혁명 전-거의 두배의 임금격차가 나고 있다. 반면 곡물로 환산한 임금의 경우 오히려 역전이 된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 내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데이터가 훨씬 더 많으므로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럽의 경우 15-16세기에는 이태리 북부등 남유럽의 은임금이 가장 높았고, 북서유럽이 그 밑이었으며 동유럽이 가장 낮았다. 16,17세기를 거치며 남유럽의 경우 은임금이 완만하게 상승했는데 반해, 북서유럽의 경우 급상승을 해서 순위가 바뀌게 된다.

반면 동유럽의 경우 은임금은 크게 불안정한 상태로 19세기까지 정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특이한 것은 곡물임금의 경우 반대의 추세라는 것이다. 서북유럽의 경우 곡물임금이 1500년경에서 1830년경까지 절반 가까이 폭락했고, 남유럽의 경우 완만하게 하락, 동유럽의 경우는 굴곡이 있되 거의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했다고 여겨졌던 서북유럽은 오히려 식량소비에서 퇴보를 한 것일까? 이는 기존의 상식과 완전 배치되는 얘기일 분 아니라, 여러 다른 사료들과도 배치되는 이야기다.

답은 명백히 '아니오'다. 비록 서민층이 1500-1830년 사이에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의 혜택을 덜 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생활수준이 하락하지는 않았다.

우선 사람들은 곡물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일인당 곡물소비량이 다 먹기 부담스럽게도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오는 것은 그 곡물소비량이 소비량이 아니라 임금으로 받는 양이기 때문이다. 임노동자들은 이렇게 받은 임금으로 곡물도 사야하지만 그외에도 의복, 주거, 땔감, 부식 등등등 많은 것을 해결해야 한다.

아무리 지니계수가 높았던 전근대사회라 할지라도 곡물 소비에의 지출은 소득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 동유럽이라던가 조선, 중국,인도의 내륙지방등은 곡물의 상대가격은 매우 쌌지만, 반면 다른 모든 재화와 용역의 상대가격이 비쌌다. 예를 들어 식량으로 국한하더라도, 서북유럽의 경우 동유럽보다 빵가격이 매우 쌌다.

곡물과 비곡물을 다 포함한 평균 물가로 환산할 때, 1500-1830년 유럽 전역과 중국 양쯔강 하류, 일본은 대게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중국, 인도의 내륙지방은 그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조선의 경우는 아직 연구가 안되어 있다.)

그렇다면 1830년 비로소 산업화의 과실이 인구전체로 퍼져서 생활수준이 본격적으로 상승하기 전까지 전세계는 대게 비슷한 생활수준을 보였던 걸까?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위에서 비슷한 수준을 보이는 임금은 어디까지나 미숙련노동자의 임금이다. 숙련 노동자의 경우 격차가 존재했다. 상인이나 지주등 부유층의 경우는 더했다고 보면 된다. 부유층일수록 곡물은 상대적으로 적게 소비하고 은으로 살 수 있는 사치품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북유럽인들은 대량의 설탕, 커피, 차등의 기호품을 소비했다.

더 나아가 숙련/비숙련 노동자의 비율에서 차이가 났다. 숙련/비숙련 노동자 임금이 같은 수준이더라도, 한쪽은 숙련노동자가 절반인데 반해 다른쪽은 10분의 일이라면 심한 소득차가 나는 것이다. 서북유럽은 숙련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았다. 양쯔강 하류나 일본의 경우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의문이 들 것이다. 도대체 숙련/비숙련 노동자 비율은 어떻게 알 수 있나? 여기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 이 비율은 훨씬 더 잘 연구된 다른 수치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바로 '도시화 비율'이다. 산업혁명 이전 도시거주자들은 숙련노동자의 비중이 높았다.

미숙련노동자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농촌의 임노동자였다.(이건 현재의 상당수 제3세계 국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서북유럽의 경우 매우 높은 도시화비율을 보여준다.

1700년경 플랑드르, 네덜란드 지역의 도시화율은 40%를 넘었으며, 영국의 경우도 20%에 달했다. 영국의 도시화율은 이후 수직상승해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동양의 경우 일본, 양쯔강 하류는 대도시가 발달해서 도시화율 10% 정도를 보인다. 조선은 역시 연구가 미진하지만 5% 미만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낼 수는 있지 않을까? 조선시대 사람들이 비록 하향평준화되어있긴 했지만 가장 밑바닥 서민들의 생활보장은 되어있어서 다른 보다 발달된 지역의 서민들 생활수준과 별 차이 안 났다.

안타깝게도 역시 답은 아니오이다.

경제사학자들이 구한 임금은 어디까지나 시간당 임금이다. 평균 노동시간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일인당 곡물소비량은 주 6일을 일한다고 가정하고 임금을 곱해서 나온 값이다.

전근대 사회의 경우 고용은 전혀 보당되어있지 않았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따르면 실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지만, 사실 실업문제는 전근대 사회가 훨씬 더 심했다.(흥부전을 보라!)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일인당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증가다.

여기서 당연히 태클이 들어올 것이다. 노동시간이 늘었는지 어떻게 알지? 서구의 산업혁명은 그야말로 죽도록 연구된 분야기 때문에 알 수 있는 방도는 많다. 그중 하나만 소개하겠다.

영국의 경우 많은 지방법원들이 지난 500-600년간의 재판기록을 보관하고 있다. 이중 피고/원고인에 대한 기록은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바이아스가 존재할 수 있으므로 무시한다 쳐도, 증인들의 기록은 믿을만한 랜덤샘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증인들이 꼭 대답하는 질문이 있다. '사건 당일날 무얼하고 있었죠?' 이에 대한 대답이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할일 없어서 밤세워 술집에서 술마시다가 날새고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에서 '공장으로 출근하는 길이었는데요'

1500년경에서 1830년경까지 영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꾸준히 증가했다. 산업혁명 이전에도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해 각종 기술혁신이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천장이 높고 큰 창을 가진 공방이 대거 지어졌다.

이러한 공방들이 이후에 공장으로 발전하는데, 천장이 높고 창이 큰 이유는 다들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태양광을 많이 받아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일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디슨의 전구 발명 이전에 조명은 매우 비싼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동시대 경제적으로 발달된 지역의 노동자들은 임금수준은 비슷했어도 오랜시간 안정적으로 일해서 소득은 훨씬 더 많았던 것이다. 반면 동유럽이나 인도, 중국 내륙지방, 조선등은 농한기에는 일거리가 부족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일거리가 없었더라도 산에 들어가서 나무를 한다던가, 나물을 캔다던가, 집안일을 돕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생활을 영위했겠지만, 그 소득은 훨씬 더 적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조선시대의 높은 곡물임금은 높은 생활수준을 증명한다기 보다 경제가 낙후됬음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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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디씨인사이드

덧글

  • 앨런비 2010/08/27 21:06 # 답글

    ...반박을 해주기도 귀찮은 글.
  • 킹오파 2010/08/27 21:29 #

    반박할 자료가 없는 겁니까? 아님 그냥 허세임?
  • 앨런비 2010/08/27 21:55 #

    자료야 좋고 비교도 좋은데, 그 자료를 엉뚱한데서 찾으니 문제.
    조선인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은 저렇게 따질 필요 없이 그냥 도량형과 식사량, 그리고 조선과 외국의 동시대인의 비교를 보면 됨.
    그 면에서 프랑스 선교사들이나 홍대용이나 그밖에 잡다한 기록에서 진짜 많이 먹었다고 기록된 것임.
    굳이 임금을 찾는 것이 삽질.
  • 킹오파 2010/08/27 22:12 #

    찬은 없고 엄청난 밥만 말하는 겁니까?
    이미 한국, 일본, 대만 공통적인게 쌀 소비량의 대폭적 감소 대신 고기 소비량은 엄청나게 늘었죠.

    참고로 인당 연간 쌀 소비량 한국 74.0kg(‘09년)은, 일본 59.0㎏(‘08년)과 대만 48.1㎏( ‘08년)으로 쌀 소비량이 엄청나게 줄어들었고요.
    중국의 경우 1인당 연간 고기소비량이 1962년 4㎏에서 2005년 60㎏으로 급증했죠.

    그냥 반찬은 없고 밥 그릇 존나 큰걸로 밥만 많이 먹는다고 잘 산다고 생각하는거 님 희망사항에 불과.
  • 라세엄마 2010/08/27 22:17 #

    '신쥬신건국사 & 봉황의 비상 세계관 설정망상중.'

    엘런비님 자제여
  • ee 2010/08/27 22:38 # 삭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규정짓기는 뭐하지만, 당시 조선사람들의 곡물 소비량이 엄청났다는 걸 전제로 다시 생각해볼 가치는 있는듯요. 글 자체가 그런거 생각안하고 서구 사회 중심으로 편향되게 쓰여진게 좀 느껴지긴하네요.
  • 킹오파 2010/08/27 22:53 #

    ee// 1970년대 쌀 소비량은 130킬로그램에 달했습니다. 현재는 70킬로그램대 수준입니다.
    밥 소비량 많다고 잘먹고 잘 사는건 아니에요. 님 같으면 반찬은 없고 밥만 많이 먹는게 그게 잘 산다고 느껴집니까...
  • ee 2010/08/27 23:03 # 삭제

    ㅎㅎ잘 먹고 잘 살았다고 얘기하고자 하는게 아닙니다. 다만 결론으로 나가는 길이 새로운 사실을 고려하여 좀더 세심하게 닦여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꺼낸 얘깁니다.
  • Urthona 2010/08/28 00:16 #

    간단하게 조선중, 말기에 소/돼지를 잡으면 동네의 온갓 인간들이 다 몰려들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 海凡申九™ 2010/08/28 08:57 #

    아아, 똑같은 생각을 하신 분이 있었네?

    urthona//
    육류소비랑 일반적인 식량 소비는 달리해야 하지 않겠음? 'ㅅ'
  • 앨런비 2010/08/28 09:14 #

    고기소비량은 한일합방시 전국의 소가 70만두정도 되니까 소의 수명을 길게잡아 10년으로 해도 꽤나 많은데 ㅡ.ㅡ
    고로 고기소비량도 지금보다는 덜하지만 생각외로 많은 정도.
    그리고.. 밥만 많이 먹는다고 잘 사는게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밥도 많이 못 먹었던게 이웃나라랍니다.
  • 앨런비 2010/08/28 09:18 #

    추가로 영양상태의 분석도 매우 찾기 쉬운 자료이니 차라리 그것을 찾는게 나을텐데 ㅡ.ㅡ
    단적인 예가 키.
    괜히 엉뚱한데로 건드릴 필요 없당께요?
  • 앨런비 2010/08/28 09:20 #

    Urthona//조선시대때 냉장고는 매우 희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육류소비가 주 에너지 섭취원이 아닌 사회에서 고기에 환장하는 꽤나 흔한일. 그런것으로 고기소비를 잴 필요없이, 그냥 전국의 가축수와 인구를 본 다음에 나누면 끝. 아무리 소가 중요하다해도 죽은 소를 무덤에 묻지는 않으니 ㅡ.ㅡ
  • 앨런비 2010/08/28 09:24 #

    그리고 서양의 육식은 농업기술의 문제도 따져봐야합니다아.
    조선의 농업에서 방목의 과정은 별로 없지만, 서양의 이포, 삼포, 사포는 방목의 과정이 있다는 것.
    그렇다고 서양의 농업이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고. 조선의 경우 그당시 사기작물이던 쌀을 재배했으니까 말입니다.
  • 앨런비 2010/08/28 09:37 #

    쌀을 재배할 때 왜 쌀에 올인한게 되는가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고.
    애초부터 다른 조건인 동네를 동일비교하는 것 부터가 문제고...
    그걸 비교하는 방법부터가 잘못되었고.
    그걸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도 문제고.
    반박을 해주기 귀찮다는게, 농업기술, 환경, 사료 그런것들을 다 따져야해서 그런건데 이거 ㅡ.ㅡ
  • Urthona 2010/08/28 21:22 #

    빙동이 드문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

    식사와 생활이 풍족했냐는 문제를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풍족하다고 말하기 힘든기 때문입니다. 이건 딱히 조선만 말할게 아니라 고래의 일본이나 중세유럽도 마찬가지인거구요.

    스튜에 건포조금 넣고 벽돌빵을 배부르게 먹을수 있었다고 해서, 그때 상황상 그럭저럭 배고프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 상황에서 최소한 배는 굶지 않았다고 (사실 이경우는 그렇지도 못했지만) 그게 잘 살았다고 지금와서 말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생각하구요.

    육류 소비량과 일반 식사를 다르게 봐야 하는건 맞는 말입니다만, 지금와서 과거를 보는거라면 그 기준도 달라져야 된다고 봅니다. 과거에 그냥 최소한 배는 굶지 않았다고 해서, 그게 풍족한 사회라고 말하는건 어려운 부분이니까요.

  • Urthona 2010/08/28 21:29 #

    리플을 달고 보니 전 현대사회에서 과거를 볼때 그 시대를 어떻게 평가해야 마땅한가에 대한 생각을적은건데, 다른 분들의 리플을 보니 이야기의 논조는 그 시대의 타국과 비교해서 민생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쪽으로 가는것 같군요. 제가 말한 이야기는 논할 필요가 없을것 같네요.
  • 앨런비 2010/08/28 21:33 #

    한끼 420CC가 겨우 배를 곪지 않을 정도인가 일단 생각좀.
  • 앨런비 2010/08/28 21:36 #

    조선인의 대식은 현대인을 압도. 뭔 가난하다는 개소리인지. 근거는 넘쳐나서 다 제시하기도 귀찮을지경. 현대인이 아무리 활동량 적고 반찬을 많이 먹는다지만 밥 한공기 120CC. 조선은 420CC. 그것도 흰쌀밥. 동시대 일본이나 중국이 조선보다 먹는양은 적었던게 확실하고. 모르면 그냥 가만히 있는게 상책.

    근거자료는 따로 제시할 필요도 없고, 그냥 인터넷 검색으로도 넘쳐나게 나오니 그냥 알아서 찾으슈.
  • 앨런비 2010/08/28 21:39 #

    참고로 이건 밥이 아닌 쌀로 420CC. 동시대 일본은 안습한 소식이고, 중국도 홍대용 왈. 밥그릇이 찻잔이네 ㅆㅂ. 이런 표현 ㄳ. 카톨릭 선교사들도 먹는 것에 환장한 인간들이라고 기록. 더이상 말이必要韓紙?
  • 이야타 2010/08/27 21:37 # 답글

    이게 디씨에서 나왔다니 놀랍네요 ㄷㄷㄷ 역갤 가니깐 완전 ㅉㅈ이들만 있던데;; 신기신기~

    잘 읽고 갑니다^^
  • 킹오파 2010/08/27 21:43 #

    정확히 말하자면 디씨 경제 겔러리..
  • 킹오파 2010/08/27 21:47 # 답글

    참고로 이 글을 본 어떤 분의 리플..

    조선후기나 에도말기 농민반란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 곡물한계선에 도달한 때문이라 집작됩니다.

    인구는 증가하는데, 먹을 것은 없고, 먹을게 없다보니 정부에 대한 불신은 증폭되고, 게다가 조선 말기에 되면 중앙의 지방장악력이 예전같지 않을뿐더러, 사림이 그렇게 바라던 지방자치로의 이향이 결국 왕도정치로 매듭짓지 못하고 부패정치로 마무리 짓게 되니까 말입니다.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이 착각하는게 있는데, 잉여생산물이 석기에서 청동기로의 진행을 촉진시킨 걸 인정하면서도, 더 큰 잉여농산물과 잉여인력이 상업화와 산업화를 앞당겼다는 사실을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나마 상업을 억제한 조선이기에 기득권들의 수탈량이 적었을거라는 추론으로 매듭짓죠. 사실 성리학 자체가 지방중급사대부가의 바이블이었음 또한 망각하고요.
  • 무아 2010/08/27 23:19 # 답글

    우리나라에도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듯이 외국에도 곡물이 수확되기 직전의 식량난이 극심한 계절이 있었을겁니다.
    곡물의 소비량이 다른 식품을 먹을수 있어서 줄어드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라면 어느정도 먹고사는데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겠죠.
    먹을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 먹어야했다는 기록들을 보자면 하층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었을겁니다.
    그런 하층민이 '쌀이라도' 많이 먹을수 있었다면 비교적 잘먹고 산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 킹오파 2010/08/27 23:45 # 답글

    참고로 현재를 기준으로 소 한 마리를 키우려면 사람 한 명이 먹는 곡물의 11배가 필요하죠. 쇠고기 1㎏을 생산하는 데 드는 물의 양은 보리 1㎏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물의 1000배나 됩니다....

    즉 사람들이 고기를 많이 먹을수록 더 많은 농업생산물이 있어야 한다는 건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조선의 농업생산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보면 될듯 합니다.

    고기를 먹기 위해서 엄청난 곡물 소비가 필요한데 고기는 안먹고 밥만 먹는거 자체가 농업 생산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라고 생각하시면 간단할듯 합니다.
  • ee 2010/08/28 00:10 # 삭제

    그럼 당시 서구나 중국, 일본등 다른 지역의 경우는 육식이 널리 퍼졌던건가요?
  • 가람온 2010/08/28 00:35 #

    좀 어긋날지도 모르지만 진짜 궁금해서 여쭙는데요,
    조선시대에 꼬맹이들 노동력이 쌌을까요, 아니면 쌀이 쌌을까요?

    소가 밥 지어 먹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서 말이죠.
    제가 들은 것은 기껏해야 꼴 베어다 끓여먹였다는 이야기 정도뿐이라서, 사람 한 명이 먹는 곡물의 11배나 된다는 소 한마리 키우는 비용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 킹오파 2010/08/28 00:38 #

    가람온// 현재를 기준으로 한거니까 조선시대와는 차이가 있을수 있겠죠.
    요즘 소들은 죄다 사료, 곡물을 먹이니까요.
  • 킹오파 2010/08/28 00:40 #

    일본은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금했고요. 저도 잘 모르지만 고기 요리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육식이 널리 퍼졌다는 거겠죠. 이건 요리사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 모라고 얘기를 해줬음 좋겠는데 역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지라..;;;
  • ee 2010/08/28 00:42 # 삭제

    근데 잘먹고 잘산다의 비교 기준을 현대로 잡으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솔까말 영국의 황금기였던 빅토리아 시대의 평균식단과 현재 영국의 평균 식단을 비교해보자면 현재 영국의 평균 식단이 압도적으로 웰빙이었을거란 말이죠;; 동시대의 다른 지역끼리 비교를 하는 편이 좀 더 명료한 결론에 도움이 될거 같네요..
  • 유나네꼬 2010/08/28 10:37 #

    일본의 경우에는 고기를 본격적으로 먹은것은 19세기 중반부터 입니다. 일단 육식금지령도 있었고;;;
    주요 동물성 단백질은 어류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죠. 가축을 키워 노동력으로 사용하다가, 늙어[;;]죽거나 뭔가 이유가 있어 죽으면 그걸 먹거나[이때도 관에 신고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일부 야생동물을 사냥으로 먹었다고는 하지만, 일상적인 풍경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요점은 일본이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은지는 150년 미만이기에 지금 말씀하시는 우리의 조선시대의 육류소비와는 비교하기가 곤란합니다. ^^;
  • 앨런비 2010/08/28 11:15 #

    고기먹는 소하고 농사소하고는 다릅니다. 물론 말이나 소나 귀리를 먹이면 최고라고 하지만, 그리고조선에서도 전마의 경우 쌀과 콩을 먹이지만, 체력소모가 그정도까지 아니면 여물로도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대신 소의 무게는 줄겠지만. 지금 소 한마리가 500킬로그램 전후고, 70년대가 300킬로그램 전후이니 대략 300킬로그램정도의 무게로 보면 될 것이고...
    조선의 경우 소고기 소모량만 계산해도 그리 적게 먹는 나라는 아니고, 생선은 아예 주식이었습니다아.
    여러번 말했지만 이런것은 임금으로 비교할 문제가 아닌, 그냥 단순히 먹는 양의 자료만 구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입니다아. 그러니까 저 글은 완전 삽질. 특히 조선은 경제발전수준이 처참할 지경인데 임금으로 비교하니 더 문제.
  • 앨런비 2010/08/28 11:25 #

    밥만 먹는 것은 농업생산력의 문제가 아닌 쌀이라는 곡물의 특성으로 봐야합니다아. 유럽에서는 뭐 목축을 곡식 맹날 먹이면서 했답니까아? 유럽도 목축은 보통은 삼포, 사포농업의 한 과정으로 했습니다아. 쌀이라는 곡물의 특성까지 설명하게하지 말게 하옵소서. 귀찮습니다아.
  • sanister 2010/08/28 22:24 # 삭제

    글쎄, 요리쪽 읽어 봤던 바로는 소 부위를 자세히 나누는거나 부위별 요리의 다양성으로 따져 봤을때 조선시대에는 충분히 많은 육식을 했다는 결론을 얻던데요.
  • 백드러머클랜 2013/11/06 16:18 #

    3년전 글에 리플 달자니 참 어색하지만 한마디 하겠습니다

    소한테 곡물을 먹여 대량으로 축산업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1차대전때 화학비료가 나온덕에 농업생산량이 급증하고 나서야 나온건데
    그 전에는 소는 오로지 풀만 먹고 소싸움 소들한테 붕장어나 낙지 민물게 가끔씩 보양식으로 먹이는게 전부인데

    소를 못키우는걸 보니 곡물생산량이 적었다 드립을 치시면 어떡합니까-_-

    여담으로 sanister님은 세계 최강의 고기요리 선진국이 바로 옆에 (중국, 몽골) 붙어있다는걸 무시하고 얘기를 풀어가시네요.
    선진국에서 연구결과 얻어오기만 하면 되는데-_-
  • 킹오파 2010/08/28 00:45 # 답글

    여기 보시면 유럽인들의 쇠고기 선호가 옛날서부터 강했고 꾸준히 소비량이 증가했다는 걸 보여주네요.

    http://www.bhgoo.com/zbxe/r_review/55889
  • ee 2010/08/28 00:47 # 삭제

    오. 감사합니다.
  • f 2010/08/28 01:53 # 삭제 답글

    이건 뭐 근거도 없이 소설 쓰네
  • 킹오파 2010/08/28 01:56 #

    허세 부리는건 좋은데 자료나 내놓고 허세 부리시죠.
  • 시울음 2010/08/28 02:00 # 답글

    조선시대 사람들은 잘 먹긴 했는데 잘 살진 않았다..
  • 킹오파 2010/08/28 02:02 #

    정확히 말하자면 밥만 먹고 반찬은 없고 그런거죠. 경제학이 대단한게 한 나라가 부유한지 가난한지 파악 가능하게 해주니... 조선이야 가난한 국가이고 유럽중에서도 서유럽이 제일 부강했다는걸 바로 보여주네요.
  • zert 2010/08/28 07:09 # 답글

    조선시대 사람들이 분명히 밥"도" 많이 먹긴 했습니다. 구한말에 촬영한 어느 남자가 식사하는 양을 보면 요즘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사람들의 식사량은 저렇게 추정할게 아니라 당대 사료를 찾아보면 됩니다 ㅡ.ㅡ

    확실히 조선시대가 상공업 인프라는 뒤쳐져 있는 상태지만 그렇다고 <잘 먹지 못한> 것은 아니거든요.

    구태여 제승방략에 규정되어 있는 군인에게 지급되는 짬밥-_-의 수량이라던가 군마에게 먹이는 곡물의 양을 떠나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한끼에 대충 얼마나 먹어 치웠나는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만 현재 기숙사라서 자료의 제한이 있으니 나중에 말씀드리지요(하다 못해 어우야담이나 기카 기록을 쉽게 뒤지면 나오는데 제한이 있어서-_-)

    PS : 오죽했으면 "조선인들은 대식가"라는 인식을 서양 선교사가 가졌겠습니까.
    PS1 : 찬이 없고 밥만 엄청나게 많지 않았습니다-_-
    PS2 : 관찰사가 "백성들이 보리밥은 안먹고 쌀밥만 찾는다"라고 해서 골치 아프다는 보고를 버젓이 한 나라가 조선입니다 ㅡ.ㅡ
  • 킹오파 2010/08/28 11:36 #

    보리밥은 안 먹고 쌀밥만 찾는다는거 자체가 쌀이 없다는걸 말하죠.
    지배층이 보리보다는 쌀만 주로 가져갈테니 농민들에게도 쌀이 없는것..
  • 앨런비 2010/08/28 12:13 #

    쌀이 보리보다 더 비쌈. 그리고 쌀밥에 환장하는 것은 일본에서도 나타나는 문제. 우리 전통적인 사회상도 마찬가지. 혼곡을 좋아하는 것은 현대의 웰빙때문에 그러는 것일 뿐.
  • 킹오파 2010/08/28 12:17 #

    그게 다 무지막지한 수탈 때문에 쌀에 환장하는거 아닙니까...
  • 킹오파 2010/08/28 12:22 #

    일본 같은 경우 다이묘들이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쌀을 오사카에 보내야 했습니다. 이에 대한 결과로 해마다 100만석의 쌀이 오사카의 도매상을 통해 유통되었으며 그 양은 1720년대에 4배가 증가했습니다. 뭐 다이묘들의 수입의 원천이 미곡이니 당연한거..

  • 앨런비 2010/08/28 12:23 #

    무지막지한 수탈이 1할의 세금?
    황구첨정 백골징수 이것도 실록을 뒤져보면 무지막지한 수준은 아닌데?
    아무리 수탈이 심해도 근본은 기본세임.
    수탈이니 뭐니 할려면 근거나 제시한 후 수탈을 야기하고.
    당장 옛날 어른들에게 물어보라능. 옛날에 쌀밥을 먹고싶었냐, 보리밥을 먹고싶었냐.
    그리고 윗동네 수령님이 흰쌀밥 고기국 타령을 한 것도 뭐 때문인지를 생각하고.
    일본에서도 전국시대 잡곡만 먹다가 흰쌀밥에 환장해서 왜 각기병에 시달렸는지 보라능.
    수탈타령, 고기타령 할 시간에 근거나 제시하길 바람.
    이제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수탈이니 뭐니 하면 그냥 정신승리정도로밖에 볼 수 없음.
  • 앨런비 2010/08/28 12:27 #

    여러번 말했지만 잡곡웰빙은 현대의 이야기. 옛날에는 흰쌀밥의 부의 상징. 그리고 수탈수탈 하는데, 그렇게 잡곡이 귀하다면 잡곡을 수탈하지 왜 쌀을 수탈함? 그리고 그렇게 쌀이 안습이라면 왜 쌀이 콩이나 보리보다 훨신 더 비싸고, 한전으로 등록한 동네도 쌀농사 지을려고 환장함? 옛날은 현대처럼 곡물이 남아도는 시대가 절대로 아니라는 것.

    추가로 쌀은 영양소면에서 단백질이 좀 부족한 것 빼고는 매우 완벽하고, 수확량에서도 압도적. 그러니 쌀 농사만 지으려고 하는 것임. 그리고 쌀 농사를 계속하면 어느순간부터 다른 농사로 인구부양 불가.

    ...이렇게 판단하는게 기본인데 뭔 노동자 임금, 수탈 그런소리만 말함? 말했자늠. 생활상을 보는데 GDP로 보는것과 PPP로 보는 것의 차이라고. 20세기말 고난의 행군 당시 북한의 GDP는 수치마다 다르지만 중국보다 더 높을때가 많은데, 그렇다고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살았음?
  • 킹오파 2010/08/28 12:32 #

    그리고 중국이 한때 북한 부러워 했던거 모르시오? 중국애들이 북한에 티비 있는거 보고 부러워했었음. 물론 과거 얘기지만..
  • 킹오파 2010/08/28 12:34 #

    한국 주재 중국 대사였던가? 예전에 북한에 유학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북한 사람들 생활 수준 부러워했다고 몇년전인가 신문 기사 나왔었음. 특이하게도 그 중국인은 한국과 북한 양국을 경험한 사람이었지만..
  • 앨런비 2010/08/28 12:38 #

    북한이 중국보다 잘 산적 있는것은 따로 이견 없는데.
    고난의 행군시기를 말하는 것이라능..
    그리고 군납 그런거 다 포함해서 1할.
    군포 1필이 아마 쌀 6말인가 12말일텐데, 정리한 것이 어디있더라 ㅡ.ㅡ;
    군세, 전세 등등 다 합하면 10~20말정도. 1결에 수확은 300~400말. 쌀 1기작 기준.
  • 앨런비 2010/08/28 12:39 #

    조선시대 평균으로 결을 나누면 한 가구가 반결 보유. 전세, 군세 등은 1결당 세금. 군포는 장정 1명당. 그리고 후기에는 쌀은 반정도 이모작, 밀, 보리는 거의 대부분 2기작정도로 보면 충분.
  • 유나네꼬 2010/08/28 10:56 # 답글

    기본적으로 '사농공상'이라고 말할정도로 농사-그러니까 쌀의 생산을 중하게 여긴 나라였기 때문에 그만큼의 생산이 나왔죠.
    조선시대에 민중이 먹을것이 없어서 고생한 이유는 쌀을 생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걸 정부에서 수거[...]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식문화만 따지자면... 당시의 사람들은 특이할정도로 이것저것 챙겨먹었습니다;;;;; 이게 뭔소린고 하니, 우리식문화는 밥상의 문화입니다. 주식인 밥이있고 거기에 이런저런 반찬을 곁들여 먹는 구조라는 것이죠. 다른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식문화입니다. 타국은 음식은 각각의 그릇안에서 완성되지만, 우리의 음식은 그 밥상전체를 하나의 음식으로 봐야할정도로 각각 상호보완하고 있습니다. 밥을 수북히 많이 먹고, 그에 비례해서 반찬들도 먹었지요. 반찬의 양이 지금과 동일하다고 한다면 더 염도가 높았겠지요.
    우리의 식생활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전보다 밥은 덜 먹고 분식이나 다른 곡류를 소모하거나, 혹은 육식[치킨!]을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뭘 먹던간에 기본 베이스로 밥을 먹기때문에 쌀의 생산과 소비가 높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지금 -> 밥과 반찬 + 분식등의 대체식품
    조선시대 -> only 밥과 반찬

    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앨런비 2010/08/28 11:10 # 답글

    여기 쥔장께서 계속 쌀만 많이 먹은게 뭐 잘사는 것이냐고 하는데.
    쌀도 못먹은 나라들이 수두룩했던게 당시사회.
    일본만해도 백미로 흰쌀밥 먹게된 것은 에도시대고, 백미쌀밥은 부의 상징이기도 했을 정도
    고기류의 부족은 농법의 차이가 절대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기소비량을 계산해보면 현대인보다는 많이 적지만, 절대부족까지는 아니라는것.
    소고기의 경우 도축되는 수를 계산하면 될 것이고(북학의에서는 하루 500마리 도축이라고 하는데 과장일 가능성 꽤 있음) 생선의 경우 조선인은 주식중의 하나였을 정도니 오히려 지금보다 소비가 더 많다고 봐야하고(김치보다 생선이 더 많이 나온다고 조선요리의 주류는 생선이었다는 기사까지 있으니)
    아메리카의 경우, 특이 미리견은 조선보다 훨신 더 잘 먹었지만, 그동네야 땅이 넘쳐나니 그런 것이고 영국은 위도상 농업보다는 목축에 더 유리한 환경이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할 문제.
  • 킹오파 2010/08/28 11:41 #

    수탈당하는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지배층들이 농민이 쌀을 먹게 냅둘리 없지요.
    울 나라도 쌀은 많이 생산해도 백성들이 쌀에 환장했듯이..
  • 앨런비 2010/08/28 11:55 #

    수탈의 문제는 그냥 조선시대 세율을 계산하면 끝. 조선시대 세율은 1할이 될랑말랑. 역사부도에까지도 매우 잘 나오는 자료. 19세기 세도정치때와 비교해서 부패로 실제로는 아니니 뭐니 한다면 안습이고. 그리고 조선시대에 지주의 수는 생각보다는 적은편.
  • 앨런비 2010/08/28 11:56 #

    추가로 조선조정은 이런 말을 하던 동네.
    '한전에서 1년2기작 하는거 뻔히 알지만 세금은 1기작 기준으로 받잖아?'
    ...이게 수탈? 부패의 문제는 그냥 실록뒤벼보면 의외로 통이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음. 물론 19세기의 세도정치 블랙홀 시기는 제외.
  • 앨런비 2010/08/28 11:57 #

    심지어 양전을 할 때도 백성들을 고려하느니, 반발을 조심하느니 해서 기준이 되는 자를 예전보다 약하게 해준다고 하던게 조선.
  • 킹오파 2010/08/28 11:59 #

    님 말대로 그렇게 세율이 낮았다면 농민들이 쌀에 환장할리 없죠.
    쌀만 주구장창 생산하는 나라가... 결국 세율 1할이 될랑 말랑은 의미가 없음.
  • 앨런비 2010/08/28 12:11 #

    그거는 논리가 아닌 감정적인 생각일 뿐. 쌀에 환장하는 것은 쌀 농사의 문제랑께? 벼농사는 밀농사보다 효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인구증가엔 좋지만, 어느 선을 넘으면 쌀말고는 인구부양 불가. 그래서 쌀에 환장할 수밖에.
    허세할 시간에 자료대라고 해서 자료댔으면 인정이나 하라능. 그럴 리 없다는 것은 논쟁에서 헛소리에 불가. 그냥 논리오류에 감정에 호소일 뿐.
  • 앨런비 2010/08/28 11:21 # 답글

    글 태클 걸 것도 한두개가 아닌데 ㅡ.ㅡ
    국제공용화폐가 은이라지만 조선의 경제는 은보다는 동이었고, 은의 경우 옆나라 짱국이 은의 블랙홀이라서 조선후기는 전세계적인 추세와 반대로 은의 가치가 오히려 올라갔습니다아. 이 문제는 아마 일본도 똑같을텐데. 그나마 일본은 은의 산지라서 좀 나은 편이라고 봐야겠지만.
    이 글은 의식주 문제를 말하는데 PPP가 아닌 일반적인 GDP를 근거로 놓는 것정도로 봐야합니다아.
  • 강희대제 2010/08/28 12:42 #

    덧붙일 건..

    국제공용화폐가 은이라지만, 일본과 중국의 직접무역이 확대되고, 조선의 중개무역이 쇠퇴하면서. 그리고 조선의 중개를 거쳐 일본으로 수입되는 대부분의 상품이 일본 자국내에서 생산되면서 일어난 수입대체화 현상으로 조선으로의 은 유입은 급격히 감소하고, 무역에서의 적자폭 확대로 은화 유출량이 증가하면서 조선의 은소유량 역시 대폭감소하였음.

    저글에서는

    "반면 당시 국제공용화폐였던 은으로 환산했을 때 조선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매우 낮다. 쉽게 얘기해서 일하고 은화로는 몇푼 못 받았지만 곡물 값이 워낙 쌌기에 그 은화로 많은 곡물을 살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곡물 값이 워낙 싼게 아니라 은화의 유통량이 현저하게 적다는걸 전혀 염두해 두지 않고있음.
  • 강희대제 2010/08/28 12:43 #

    조선후기 대외무역 적자폭 확대와 은보유량 감소의 추세에 관해서는 다음책 참조.

    정성일, <조선후기 대일무역>, 신서원, 2000
  • 앨런비 2010/08/28 12:43 #

    내 말과 같은 말. 일본에서 수입하는 은이 일본의 은 고갈로 줄고, 하지만 짱국으로 은이 계속 유출되니 은이 전세계적 추세와 반대로 오히려 가치가 올라가는데 저 소리를 하니.
  • 앨런비 2010/08/28 12:45 #

    그리고 짜장리플에 태클이라면 일본의 은은 17세기 말이면 생산량 대폭감소. 청일 직접무역의 문제도 있지만 이미 청일 직접무역을 할 시기면 일본의 은은 거의 고갈되고 주력수출도 동으로 바뀌기 시작.
  • 앨런비 2010/08/28 12:36 # 답글

    얼레 중앙대였습니까?
    그러면 DC식 가지고 놀기 말투로 한 것이 무지 미안해지는데-_-;;
  • 킹오파 2010/08/28 12:37 #

    저 중앙대 아닌데요. 뭐지?
  • 앨런비 2010/08/28 12:39 #

    아님 말고. 글중에 중앙대 관련글 있길래.
  • 킹오파 2010/08/28 12:37 # 답글

    그러나 실제로는 국세라 할 수 있는 저 1할 빼고 관아에 내는 잡세 1할, 방군수포제에 따른 군납등도 계산해야 합니다.

    특히 부담이 컸던 것은 지역별로 특산물을 왕실에 갖다 바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려고 아전(현재의 통반장들이라 할 수 있을지도)들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했는데 어쨌거나 이들도 일단은 먹고 살아야 했으므로 당연히 농민들을 수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국가가 이들을 부패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님 1할이라고 다 1할이라고 망상하지 마삼. 실제로는 1할이 아니니까..
  • 앨런비 2010/08/28 12:42 #

    1할은 대동세, 전세, 삼수세, 군포 다 포함하는 수치 ㄳ.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능.
  • 앨런비 2010/08/28 12:43 #

    과연 대동세, 삼수세가 뭔지 알긴 알려나. 내가 괜히 역사부도나 보라고 한 것이 아니라능. 역사부도에 도표로 아주 잘 정리해놧으니까.
  • 앨런비 2010/08/28 12:46 #

    참고로 유의 망상대로 전세가 1할은 절대 아님. 전세는 1푼임. ㄳ. 삼남은 5푼인데 절대 생산량이 그만큼 많은 것을 고려해야함 ㄳ
  • 강희대제 2010/08/28 12:48 # 답글

    덧붙이는 말이지만,
    조선시대 농업에서 논농사(수경을 활용한 벼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금과 달리 밭농사보다 그 상대적 수준은 적었고,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보리, 팥, 조 등을 생산하는 밭농사였음. 쌀생산량의 증대에 집중적으로 환장하고, 전체농업에서 쌀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상승해나가던 시대는 조선시대가 아니라 일제시대이고, 실제로 그에 대한 통계자료도 방대하게 남아있는 상태.

    농업이 꽤나 발달해있던 조선후기에도 수리시설의 부족과 지형적 제한 등으로 논농사의 비중은 일제시대에 비해 크지 못했음.
  • 킹오파 2010/08/28 12:49 #

    오호. 그렇군요.
  • 앨런비 2010/08/28 12:49 #

    분명히 조선시대에서 한전의 양이 수전의 2배정도인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시대에도 한전으로 등록하고 쌀 농사를 짓는 일은 많았다는 것. 그래봤자 한전의 양이 여전히 많겠지만. 쌀은 역시 수리시설이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 강희대제 2010/08/28 12:50 # 답글

    그리고 위에 퍼온 글은 출처불분명의 쓰레기인데 뭘 좋다고 퍼온건지 모르겠음.
  • 앨런비 2010/08/28 12:51 # 답글

    그냥 그 시간에 만기요람이나 읽길 권장. 저 글은 깔 구석이 너무 많음. 저렇게 조사하는게 바로 삽질.
  • 강희대제 2010/08/28 12:52 # 답글

    비교사적 관점을 저렇게 차이점에 대한 염두 없이 마구잡이로 갖다 붙여놓는걸 보니 저건 개념글이 아니라 뻘글임.
  • 강희대제 2010/08/28 12:55 # 답글

    디씨 경제갤이라는게 현대경제에 대해서는 나름의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이 몇몇 있는것 같은데. 유독 경제사쪽으로만 가면 지식이 결여되서 개안습쪽으로 넘어감. 블로그 주인장 "킹오파"가 퍼온 다음의 리플을 보면.

    '인구는 증가하는데, 먹을 것은 없고, 먹을게 없다보니 정부에 대한 불신은 증폭되고, 게다가 조선 말기에 되면 중앙의 지방장악력이 예전같지 않을뿐더러, 사림이 그렇게 바라던 지방자치로의 이향이 결국 왕도정치로 매듭짓지 못하고 부패정치로 마무리 짓게 되니까 말입니다.'

    -> 저게 뭐 농민반란이 자주 발생하계되는 계기를 설명한답시고 싸질러놓은 리플인데. 농민반란 일어나기전에 조선의 인구추이는 감소추세로 돌아가는 것이 조선인구추세에 관한 연구들의 공통적인 견해인데, 뭔 근거로 조선인구가 증가하는데 비해 식량이 부족해져 생활상이 악화된다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음. 맬더스 책을 너무 많이본 것 같은데..
  • 강희대제 2010/08/28 12:57 # 답글

    말에 가면 인구가 증가하는데에 비해 식량생산이 줄어드는게 아니라.. 인구와 식량생산 농업샌산량이 전부 한꺼번에 줄어드는 추세를 확인할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수량경제사를 이용한 한국경제사 연구성과임. 어디서 맬더스 깔작 배워서 그의 이론을 조선시대에 적용하려고 든 것 같은데.. 어찌됐던 개뻘소리임이 분명.
  • 앨런비 2010/08/28 13:01 # 답글

    여하튼 반박할 것 있으면 정상적으로 반박이나 해보라능. 되도 않는 트집 잡지 말고. 이렇게 리플이 길어지니 귀찮다는 것인데 ㅡ.ㅡ
  • 강희대제 2010/08/28 13:08 # 답글

    그리고 여기에 유나네꼬라는 이름으로 리플단 사람 글에도 할 말이 있음.

    "조선시대에 민중이 먹을것이 없어서 고생한 이유는 쌀을 생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걸 정부에서 수거[...]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요건 통상적인 편견적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사회상인 것 같음.
    조선시대에 민중의 생산고를 정부에서 모조리 수거해가고 분배를 하지 않았다. 요런 내용 같은데, 정작 생활수준이 개차반나던 조선후기 이후 ~ 말기에는 정부가 관리하는 쌀의 보유고는 한없이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었음.

    더 정확히 말하면, 본래는 식량생산량이 부족한 지역에 대하여 쌀 분배기능을 수행하던 중앙정부 주도하의 쌀분배제도인 환곡제도가 정치문란으로 인하여서.. 분배제도로써의 임무를 망각하고, 중앙정치권력의 세속경제력 확보의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중앙에 의한 쌀분배시스탬이 붕괴되고, 각지역의 곡물 유통시스탬이 경색되면서 쌀분배시스탬에 의존하던 식량수급력이 떨어진 것. 정부의 곡물수취 기능의 설명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고 글을 쓰는게 좋을 것 같음.
  • 유나네꼬 2010/08/28 16:48 #

    제가 예전에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조선시대의 쌀을 세금으로 걷어가고 분배하는 제도적인 장치에는 문제가 없었던 반면에, 그걸 적용함에 있어 이 덧글에서 말씀하신것과 같은 문제가 있어 결과적으로는 농민에게는 남는 것이 별거 없게되었다...라고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때 비교대상으로 적용했던 것이 일본의 경우 였는데, 이쪽은 세율은 세지만 어찌어찌해서 먹고 살수 있었다;;; 뭐 이런 논지였습니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도 귀찮고 기억도 좀 가물가물했는데, 정확하게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앨런비 2010/08/28 13:11 # 답글

    추가내용. 아무리 쌀을 수탈한다해도, 어차피 도는 것은 조선내에서 돌아다님 ㄳ. 쌀의 대량수출은 개항이후. 그 전에도 일본에 쌀 수출 꽤나 한거로 알지만.
  • 강희대제 2010/08/28 13:27 # 답글

    추가로..
    이글은 초점 자체가 잘못됐음.

    여지껏 조선후기 임금수준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임금을 받는자들이 하는 노동의 내용은 주로 국역사업. 즉 묘지 개수하고 왕실의 건축물을 개수하는 등등의 사업때 동원된 노동력에 대한 임금지급 표준에 대한 연구였음. 조선인구 전체대비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수를 임금을 받지 않는 절대다수의 사람들과 대비해서 퍼센트로 표시하면 과연 몇퍼센트일까. 조선시대 국역사업에 대한 임금지급표준내용을 싣고있는 의궤를 바탕으로 한 박이택의 연구 <서울의 숙련 및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 1600~1909>를 보면 임금노동에 있어서도 임금노동을 주업으로 하는 숙련노동자에 대한 인센티브가 문서상으로는 확인되지 않다가 갑오개혁때나 눈에띈다는게 주 내용인데..

    그만큼 임금노동이 보편화되지 않는 조선시대에 임금만을. 그것도 임금에서 곡물 분배량이 많은 이유 하나만을 비춰서 조선시대 민중 전체의 생활수준을 가늠한다니. 참 기가찬 이야기임.
  • 강희대제 2010/08/28 13:31 # 답글

    임금의 지급표준의 시대별 변천추이를 통하여서 한 단면을 비추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임금에서 화폐보다 현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으므로 조선경제는 갮이다. 라는 아주 요상한 헛소리를 별 되먹지도 않은 서구 사회와의 비교로 개념글인양 가오를 잡는데..

    화폐경제가 보편화된 지금시대에도 한 나라의 생활수준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통계지표가 쓰이는데.. 어떻게 화폐유통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대에 생활수준을 가늠하는데 저렇게 단순한 개똥철학으로 얼버무리는 건지 모르겠음. 실물경제가 지배적인 시대에는 지금의 방법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분석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걸 모르는건지. 아니면 귀찮아서 무시하고 한가지 잣대로만 판단한건지.
  • ArchDuke 2010/08/29 06:30 #

    음 본좌강림 감사합니다.
    운동 에너지 기준으로 대사량을 산출해보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은 드는데. 이런 방법도...
  • zert 2010/08/28 16:59 # 답글

    간만에 건전한 토론이 될만한 글인가 했더니....-_-

    현대의 상식, 기준 + 상상 + 막연한 짐작으로 당대를 보려고 해봤자 한 줄, 한 권의 사료에 의해 명백히 무너집니다 -_-
  • 앨런비 2010/08/28 21:36 # 답글

    결국 이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네.
    모르면 닭장에서 닭이라도 치면서 아가리를 다물고 사는게 상책이다.
  • 앨런비 2010/08/28 21:43 # 답글

    허세라길래 간만에 몸 좀 풀어보니 정신승리만 계속 하다가 버로우일세.
  • 트윈드릴 2010/08/29 08:08 # 답글

    1.
    통계는 과거로 갈수록 추정치의 신뢰도가 낮아지는 것은 사실이예요. 그리고 통계는 일단 맥락을 살펴봐야 하는 것이고요.

    2.
    과거 농경사회의 엥겔계수 -- 소득 대비 식료품비 -- 가 높고, 많은 생산및 교환활동이 자급자족이나 물물교환으로 이뤄진 걸 감안하면 은으로 환산한 임금이 낮다고 낮게 볼 문제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조선은 윗분들도 지적하셨듯이 주변 국가와의 은 교역에서 은을 수출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한줄로 요약하자면, 해당시기 조선 사람들은 식량 사정이 타국보다 나았지만 (이것이 반드시 생활수준이 높았다고 보기는 힘들지만요) '잉여자본'으로 환산하긴 힘들었다, 정도가 될 듯 하네요.
  • 트윈드릴 2010/08/29 08:19 # 답글

    3.
    "산업혁명 이전 도시거주자들은 숙련노동자의 비중이 높았..."

    중세시대는 숙련노동자들이 제도적으로 보호받았지만 -- 그때는 도시거주가 특권이었기 때문에 훗날 '부르조아(성내 거주민)'이란 용어가 탄생하지요 -- 르네상스 시대 이후 도시거주자들 가운데 '숙련노동자의 비중'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도시화 비율이 높아진 이유는 상공업의 발달로 일자리가 늘어났기 때문에 그걸 차지하기 위해 흘러들은 것이고요. (물론 흑사병 때문에 노동자 수가 절대부족해진것도 있음 ㄳ) 이 점은 17-18세기 내내 도시 빈민층의 비중이 높았다는 걸로 입증됩니다.

    4.
    "산업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일인당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증가다."

    이건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 가설인데 반증자료가 더 많아 아직까진 가설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_-;; 그러므로 "농한기에는 일거리가 부족했을 것"은 맞는 말이지만, "일인당 노동시간의 대폭적인 증가"는 산업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예요.

    5.
    "결론적으로 조선시대의 높은 곡물임금은 높은 생활수준을 증명한다기 보다 경제가 낙후됬음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화폐경제'를 기준으로 보면 경제가 낙후된 건 맞지만, 생활수준이 높은 것도 일리가 있는 표현입니다. 다만 임진왜란 이후로는 시tothe망이죠. ㅋ
  • Event Horizon 2010/08/30 19:35 #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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