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도공은 천민이 아니며 오히려 특혜를 받았다. 역사



조선의 도공은 과연 천민이었을까?

흔히 얘기하는데 조선의 도공들은 천민의 대우를 받았다... 사람 취급을 못 받았다.. 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마침 뉴라이트쪽인 낙성대 연구소 쪽에서 오히려 조선의 도공들은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하셨다.


팔당호 동남쪽, 지금은 붕어찜으로 유명한 경기도 광주 분원(分院)은 그 옛날 왕실에서 쓰던 격조 높은 도자기를 만들던 곳으로 이름 높다. 수억 원 대를 호가하는 조선 백자들은 대부분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다. 그런데 이곳의 가마들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홀연히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지난 30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낙성대경제연구소 주최 ‘조선왕조의 재정과 시장’ 학술대회―. ‘19세기 후반 분원 도자의 생산과 유통체제’를 발표한 이 연구소의 박희진 연구위원은 그 이유에 대해 “시장 원리에 의해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한 탓”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가 생산과 유통에 관여하던 반관반민식 운영체제였던 분원은 원료와 땔감을 국가로부터 공급받는 등 여러 이권을 보장받고 있었다. 19세기 말 그런 연결고리가 끊기자마자 ‘가볍고 그림이 화려한데다 값도 싼’ 일본 도자기와의 경쟁에서 허무하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4/02/2007040200007.html

사견이지만 이런 뉴스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선에 유명한 도공이 없거나 도공 일가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 자체가 사치를 금한 걸 생각한다면(물론 배경 있는 양반들이야 죄다 중국제 도자기를 수입하느라 안달나셨겠지만 말이지..) 당연히 도자기 같이 여유 있는 계층들이 좋아할 만한 걸 생산하기가 힘들다.

즉 수요가 없으니 기술 발전이 힘들지...
게다가 임진왜란때 도공들이 끌려가서 도자기가 타격을 입었다는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알겠지만 도공이 납치되었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내 검색 능력이 딸린 건지 모르겠지만 난 못 봤다.)

자발적으로 도공들이 일본으로 갔다는데 그런 기록은 실록에 없는 걸로 안다.
즉 도공들이 일본에 가더라도 아주 소수였기 때문에 기록에 남지 않았던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국가가 이권을 대주는데 무엇때문에 말도 안 통하는 남의 나라에 집단으로 갈리가 있나?
전쟁나면 어떻게든 토껴서 잡히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물론 소수는 잡혔겠지만...

즉 내 생각에 도공들이 일본에 간건 맞지만 그것은 소수이며 소수이기 때문에 국내에 별 기록이 없고 조선의 도공들은 천민이 아니며 좋은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굳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대규모로 일본에 갈리가 없다고 본다.

대규모로 도공이 일본에 갔다는 얘기는 신화가 아닐까? 내가 알기론 15세기 초반에 국가가 분원을 세운걸로 안다.

물론 분원에 포함되지 못했던 사람들이야 얼마 못가 몰락한 걸로 알고 있지만 분원에 일하던 사람들은 국가가 원료도 대주고 땔감도 대주고 그런걸 하는데 "천민"이라고 볼 근거가 어디 있는지????

그리고 분원에 갈 정도면 실력이 있다는 것이고 실력이 있으면 국가가 원료와 땔감 외에 기타 이권들을 보장해 주는데 과연 조선의 도공들이 천민 대우를 받았을까? 난 회의적이다.

천민이라면 천민에게 왜 국가가 여러가지 이권을 보장해 주었겠는가? 즉 조선도 조선 나름대로 도공 중에서 실력 좋은 넘들만 선발해서 그 사람들에게 이권을 주었으니 천민이라고 보기엔 무리이지 않을까?

즉 도공 = 천민 이라는 근거는 부족한거 같다. 분원 체제 때문에 몰락한 도공들도 많겠지만 그들이 실력이 있었음 여러가지 특혜를 주는 분원에서 일하고도 남지.

즉 도공은 천민이 아니며 그들은 양반은 아니지만 양민 이상의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

뭐 조선을 까는 얘기 중 하나가 도공이 천민 대우를 받아서... 이런 얘기가 많은데...

아는게 짧지만 내 생각에 조선의 도공은 천민이 아니라 양민 이상 대우이며 동시에 일본에 대규모로 건너갔다는 것에는 부정적이 될 수 밖에 없다..

국가가 여러 이권을 보장해 주는데 대규모로 일본에 건너갔다는 것은 자연히"확률이 적다"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

즉 조선 도공 가지고 조선을 까는 소재로 쓰는건 무리이지 않을까?

뭐 난 조선에 그다지 우호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낙성대 연구소 사람의 말을 들어볼때 조선 도공은 좋은 대우를 받았으므로 일본으로 갈 이유가 그다지 없고 국가가 도공들을 사실상 관리하는것과 다를바 없기 때문에 국가에 기록들이 없다면 조선 도공들은 소수만 갔다고 나는 생각한다.

덧글

  • 개조튀김 2010/09/08 15:02 # 답글

    도공이 천민 대우를 받았다는 건 못들어 봤는데.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사농공상으로 별로 대접이 안좋았다는 이야기만 들어봤는데. 천민대접이라는건 금시 초문이라서;
  • 킹오파 2010/09/08 15:04 #

    인터넷에서 종종 나도는 얘기입니다만... 하여간 도공들은 양민 이상의 대우들을 받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신문에서도 가끔 도공 = 천민 대접 받던 사람들로 자주 나오더군요.
  • 개조튀김 2010/09/08 15:28 #

    도공들이 천민들이 아니라 천하게 여겨서 천민들이 많이했다는 이야기는 들리네요.

    http://book.naver.com/bookdb/text_view.nhn?bid=2094009&dencrt=yb4UbOZc844wG%252BBV8b%252FYxZn3GygEENSJskGP%252BnLhQBE%253D&term=%B5%B5%B0%F8+%C3%B5%B9%CE&query=%EB%8F%84%EA%B3%B5+%EC%B2%9C%EB%AF%BC

    이거 좀 헷갈리네요. 직업이 천했다는건지 도공은 계급상 천민이라는 건지.
  • 킹오파 2010/09/08 15:31 #

    뭐 좌우당간 국가에서 관리를 할 정도면 나름 신경 썻다는 건데 왜 "천민" 대접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힘드네요. 게다가 국가가 관리했는데 도공들이 대규모로 사라졌다면 기록에 나올만 한데 찾기 힘든거 보면 그냥 소수가 잡혀가거나 일본으로 이주한게 숫자가 왕창 늘어난게 아닐까..
  • 88888 2010/09/08 17:38 # 삭제 답글

    조선시대 사농공상의 신분 제도가 있었다지만 양반 아니면 다 천민 아닐까여
    양반들도 무관쪽은 무식한 백정취급 받았다고 들었는데
  • 셰이크 2010/09/08 19:05 #

    사농공상 이전에 양천제기는 하지만 양반은 양인 중에서도 사죠. 천인은 사농공상에 해당하지 않는 천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에서 백정은 최하의 취급을 받아 모든 생활에서 규제되었습니다. 무관을 문관이 우습게 보기도 했겠지만 백정에 비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죠. 양인이면 어린 아이도 나이를 불문하고 백정에게는 하대를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 ARX08 2010/09/08 19:30 #

    조선시 사회 구조가
    양반
    농부
    공업(기타생산직)
    상인
    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천민은 이 계층 아래 수드라 계급이었습니다.)
    인구 대다수가 농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천시했지만, 천민은 아니었다는 말이 맞네요.
  • 셰이크 2010/09/08 20:52 #

    일단 농민은 재정만 뒷받침이 되면 향교에 다닐 수 있었고, 과거도 볼 수 있었죠. 물론 현실은...
  • 킹오파 2010/09/08 22:38 #

    이론은 그저 이론일뿐... 농민 중에 과거를 보는건 아주 부농 아니고서야..
    조선은 그저 양반을 위한 나라였을뿐..(뭐 그 시대때는 어느 나라나 다 그랬으니까요..)
  • 킹오파 2010/09/08 19:25 # 답글

    좌우당간 제 생각은 국가가 병쉰이 아닌 이상 국가가 관리하는 도공들이 무더기로 사라진다면 일본에 클레임 걸게 뻔할 거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일본측으로 대규모로 빠져나갔다면 조선 스스로도 대책을 세우고 그랬겠지요. 하지만 그런 대책이 없었던 걸로 압니다.

    제 생각에 조선의 도공은 굳이 일본으로 갈 필요가 없었으며 가더라도 조선이 신경 안 써도 될 정도로 아주 소수만 가서 기록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조선 도공이 일본에 마구 마구 가게 되었다는 부정하는 편입니다.
  • 청풍 2010/09/08 21:47 # 답글

    그런데 국영, 혹은 반 국영 가마에 국가가 땔감과 원료를 대는건 당연하지 않나요...땔감과 원료를 대주는데 그게 이권이라는것도 좀 이해가 안가고, 국영가마에서 일했다는게 꼭 신분적으로 대접을 잘해줬다는 말로도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 킹오파 2010/09/08 22:42 #

    저도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공노비"와 "사노비"의 대우가 틀린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록 도공이라고 해도 농민 정도의 준수한 수준 아닐까요? 어차피 도공은 천민이 아니니..
  • 다른경우 2010/09/08 22:53 # 삭제 답글

    사농공상 에서 그 윗단계인 상

    상인만 해도 천대받았다고들 하지요.
    라고 하지만 그건 사실 후대에 강해진 신분제이긴 한데

    부정할수도 없을껄요. 상인은 양반에게 이름도 못댄다던가.
    공인은 이동의 자유도 없는거죠.
  • 킹오파 2010/09/08 22:58 # 답글

    뭐 실은 저두 잘 아는것도 아니고 그냥 뉴라이트 쪽에서 도공이 특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결국 도공들의 대우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쁘지 않았고 굳이 말도 안통하는 일본에 대규모로 갈 이유는 없고 소규모로 아주 소수만 갔기 때문에 별로 기록도 없다... 라고 가설을 세우고 주장하는 거 뿐이니까요.

  • 노아히 2010/10/29 04:10 # 답글

    공노비와 사노비의 대우가 다른 건 아니고, 공노비의 경우, 입역노비와 납공노비로 나뉘고, 사노비의 경우 솔거노비와 외거노비로 나뉘는데, 이 분류에서의 대우가 달랐다고 합니다.

    입역노비와 솔거노비가 소위 말하는 이동의 자유도 없는 노비로 입역노비는 소속 관청에서 일하는 노비고 솔거노비는 주인집에 상주하는 노비라고 하네요.

    한편, 자기가 속한 관청에 노비세를 무는 납공노비와 집 주인에게 받은 땅을 개간해서 수확을 바치는 외거 노비는 역할 상, 추노 같은 데 나오는 '노예 같은 노비' 라기보다는 중세 영지물에 나오는 '농노'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노비의 80% 이상은 납공노비와 외거노비였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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